음과 음의 사이, 음악과 소리의 간극, 소리를 만드는 몸짓과 몸짓이 만드는 소리. ATM의 첫 번째 공연은 음악가들이 다루고 있는 음악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선보입니다.
Between tone and tone, the boundary between tone and sound, the relationship between sound and gesture. A performance about the musical ‘gap’ that musicians look at.
Artist/Performer
문석민, 손세민, 수자나 라슈쿠, 이금희, 이상욱, 정현지, 주앙 카를로스
핀토
Seokmin Mun, Semin Son, Suzana Laşcu, Kumhee Lee, Sangwook Lee, Hyunji Jung, João Carlos Pinto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악보와 악기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열광하며 경청할 것이다. 그러나 음과 화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철저히 외면할 것이다. 여기서 할 이야기는 후자이고,
본질적으로 중요한 진실은 늘 추상적이다.
음과 음의 만남. 음과 음이 아름답게 섞이면 협화라고 부른다. 음과
음이 이질적으로 부딪치면 협화라고 부른다. 불협화는 악이고 협화는
선이며, 악의 고통과 불완전함은 선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을
더욱 극대화시키며, 이러한 악과 선의조화는 세상의 신성한 질서라는
라이프니츠와 메르센의 신학적인 해석들. 이것은 많은 음악에서
진실이다.
한 음이 한 번 진동할 때 다른 음이 두 번 진동하면 옥타브라고
부른다. 한 음이 두 번 진동할 때 다른 음이 세 번 진동하면 완전
5도라고 부른다.공통 주기 안의 상호 개별 주기에 전자는 하나의
교차점, 후자는 세 개의 교차점이 있다. 이 교차점이 적을수록 협화,
많을수록 불협화이다.
음과 음의 궁합을 숫자, 곧 이성으로 표현하는 피타고라스의 유산.
오일러는 이 원리를 이렇게 확장한다.
이것은 친밀도의 수학 공식이다. 나는 이것을 응용하여 불화의 짝과
화합의 짝에 64개의 단계를 부여하였다. 12음과 14음 평균율을
중첩하면 이를 포함하는 충분히 다양한 음정을 얻는다.
협화성은 곧 복잡성이다. 음과 음의 만남은 감정도 이념도 아닌 단지
상대적인 혼잡성이다. 현실의 음정은 늘 오차가 있지만 우리는 그것의
근사값을 듣는다. 이론적인 조율 체계와 현실의 소리 양상을 오독하는
오해와 미신들. 평균율은 서구의 반자연적 폭력이 아니라 충분히
아름다운 협화다. 세밀하고 정교한 순정율은 민속음악과는 별개로
근대적 산물이다.
이 작업은 생소한 외국어로 나누는 즉흥의 대화이며 불협화에서
협화로의 긴 여정이다.
If you bring up a story about a visually interesting musical score
and instruments, people will listen enthusiastically. But if you
bring up the subject of tone and chords, people will turn a blind
eye. The story here is the latter, and the essential truth is
always abstract.
The meeting of tone and tone. When tone and tone are beautifully
mixed, it is called harmony. When tone and tone collide
heterogeneously, it is called disharmony.
Disharmony is evil and harmony is good, the pain and imperfections
of evil further maximize the desire for the perfect beauty of
good, Leibniz and Mersenne's theological interpretations that this
harmony of evil and good is the divine order of the world.
This is true in a lot of music.
When one tone vibrates once and the other vibrates twice, it is
called an octave. If one tone vibrates twice and the other
vibrates three times, it is called full 5 degrees. In each cycle
within a common cycle, the former has one intersection and the
latter has three intersections. The fewer this intersection, the
more disharmony.
Pythagorean heritage of expressing the harmony between sound and
sound with numbers, the reason. Euler extends this principle in
this way.
This is a mathematical formula of intimacy.
I applied this to give 64 steps to the pair of disharmony and
harmony. When the 12-note and 14-note average rates are
overlapped, sufficiently diverse notes including them are
obtained.
Harmoniousness is complexity. The meeting of tone and tone is not
emotion or ideology, but just relative congestion. There is always
an error in the pitch of reality, but we hear its approximation.
Misconceptions and superstitions that misread the theoretical
coordination system and the sound aspect of reality. The average
rate is not anti-natural violence in the West, but harmony is
beautiful enough. Fine and sophisticated purity is a modern
product apart from folk music.
This work is a spontaneous conversation in an unfamiliar foreign
language and a long journey from disharmony to harmony.
이 작품은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필요한 움직임이나 일상에서의 움직임이 어떻게 음악의 재료로서 사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이다. 악기에서 발생하는 소리와 다양한 몸의 움직임은 동등한 재료로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변주된다.
This work is an experiment on how movements necessary to play an instrument or movements in everyday life can be used as a material for music. Sound generated from musical instruments and various body movements are transformed in a close relationship as equal materials.
우주는 창조되지 않았다. 정의상 ‘아무것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남은 것은 존재다. 존재는 무한하다. 거기엔 시작이 없다. 그러므로, 끝 또한 없다. 그러므로, 거기엔 창조자가 없다. 그러나, 이 우주가 존재하지 않는 우주의 기원은 존재한다. 즉, 이는 존재의 무한한 작은 부분일 뿐이다. 이 우주는 존재의 영원성 안에서 피할 수 없는 자발적인 사건이다. 모든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고, 이 우주를 포함해서 이미 일어났듯이... 이른바 ‘생명’은 이 우주의 물리적 성질의 필연적인 결과다. 그러나 우주에는 의미가 없다. 존재하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다. 하지만, ‘삶’은 의미다. 그 의미는 마음 속에 살아 있다. 인간은 의미를 주문하지만, 이는 의미가 있다고 믿는 거짓 아래에서 작동한다. 불가사의한 계획. 당신은 의미를 찾지 않는다.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미는 의미의 존재의 창조이다.
The Universe wasn’t created. ‘Nothing’, by definition, does not exist. Since ‘nothing’ cannot exist what is left is existence. Existence is infinite. It doesn’t have a beginning. It doesn’t have an end. And, therefore, it doesn’t have a creator. However, exists an origin to the universe, being that this universe is not existence. It is, merely, an infinite small part of existence. This universe is an inevitable spontaneous event inside the eternity of existence. Each and every event can, wants and as already happened... including this universe. The so called ‘life’ is as inevitable consequence of the physical properties of this universe. That said, the universe as no meaning. The act itself of existing as no meaning. Yet, ‘life’ as meaning. The meaning lives in the mind. The human being conjurates meaning but operates under the false believe that meaning is a mystical plan. You don’t search for meaning, because meaning can’t be found. Meaning is the creation of the existence of meaning.
모듈러 합성과 목소리를 통해 탐험하는 힌두스탄의 고전 라가.
Hindustani classical ragas explored through modular synthesis and voice.
그래뉼라 프로세스와 공간화된 음향 시에 의해 움직이는 싱어송라이터.
Singer-songwriter driven by granular processes and spatialized sonic poetry.